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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 신궁

更新日:2024年02月16日

오에이(시대) 옛 그림

오에이(시대) 옛 그림(15세기 초기)

13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우사 신궁은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신사 중 하나로 국가와 황실의 수호신인 하치만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하치만 신을 모신 신사는 수만 곳 이상이 존재하는데 우사 신궁은 그 신사들의 총본궁(總本宮)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사 신궁이 칙사(천황의 사신)를 받아들일 자격이 있는 17곳의 신사 중 하나라는 점도 황실과의 깊은 역사적 연관성을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Usa Jingu depicted in The Illustrated Diary of Minomushi Sanjin (1864) 1
Usa Jingu depicted in The Illustrated Diary of Minomushi Sanjin (1864) 2

미노무시 산진 그림 일기(1864)에 그려진 ‘우사 신궁‘

우사 신궁은 신토와 불교가 융합된 신불습합의 신앙 형태를 가장 이른 시기에 발전시킨 장소 중 하나이자, 신사와 사찰이 융합된 종교 시설로서 크고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존재였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신토와 불교가 분리된 후 우사 신궁은 완전히 신토만을 위한 신사로 변모했지만, 과거 신불습합 시대의 형태가 반영된 관례는 오늘날에도 다수 남아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신을 옮기는 미코시, 살생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붙잡은 생물을 놓아주는 호조에 의식, 그리고 두 채의 건물을 앞뒤로 연결하여 하나의 신전으로 만드는 하치만즈쿠리라는 독특한 건축 양식 등의 몇 가지 전통이 바로 이 우사 신궁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Mikoshi portable shrines

미코시

Hachiman-zukuri architecture

하치만즈쿠리

Hojo-e ritual

호조에

경내

광대한 규모의 우사 신궁은 오구라산과 그 주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사 신궁의 중심은 산 정상에 있는 조구(上宮, 위쪽 신사)와 산기슭에 있는 게구(下宮, 아래쪽 신사)입니다. 경내와 인접한 언덕에는 수많은 말사와 섭사(큰 신사에 소속된 작은 신사)도 산재해 있으며, 오쿠노미야(가장 안쪽에 있는 신사)는 남쪽으로 약 6km 떨어진 오모토산에 위치해 있습니다.

Aerial view of the shrine grounds

경내 항공사진

Treasure Hall

보물관

대부분이 숲으로 덮여 있는 우사 신궁의 경내는 밝은 주홍빛의 신전, 도리이, 다리가 푸르른 신록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또한 경내에 있는 여러 개의 연못과 그 주변에는 계절마다 형형색색의 꽃이 피고 다양한 야생 생물이 서식합니다. 연못 근처에 자리한 보물관에는 미코시, 고타쿠센슈(御託宣集, 가마쿠라 시대에 우사 신궁의 내력을 정리한 책), 조각상, 칼, 의례용 도구, 다양한 역사적 문서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사 신궁에는 여러 국보와 수많은 중요문화재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우사 신궁의 역사와 모셔진 신들

히시가타 연못과 오구라산

우사 신궁에서는 3명의 주요 제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오진 천황(제15대 천황)을 신격화한 하치만 신입니다. 하치만 신은 어머니인 진구 황후, 그리고 예로부터 우사에서 히메 대신이라는 총칭으로 숭배되어 온 바다의 세 여신과 함께 모셔지고 있습니다. 우사 신궁의 기록에 따르면 하치만 신은 571년 오구라산 부근에서 처음 현신하여 자신이 일본의 수호자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하치만 신을 모시는 장소는 여러 차례 변경을 거듭한 끝에 오구라산 정상의 비교적 넓은 부지로 선정되었고 725년에 신전이 지어졌습니다.

긴 역사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천황과 귀족, 무사 가문의 당주, 그리고 그 외 권력자들이 하치만 신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8세기 무렵 천황은 나라 도다이지 절(東大寺)의 대불 건설을 하치만 신이 지켜봐주기를 바라며 그를 초대했습니다. 수십년 후 황위 계승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사 신궁에서는 하치만 신의 신탁을 참고로 삼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10세기에는 중앙 정권에 대항해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조정이 하치만 신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후 13세기에 몽골인들이 일본을 침공하려 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하치만 신에게 보호를 요청했고, 하치만 신이 신령한 바람을 일으켜 몽골군의 공격을 막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치만대신의 나라 도다이지 절 행차를 재현한 우사 미코시 페스타(2017)

Shrine grounds during the Great Showa Reconstruction (1932–1941)

쇼와의 대재건의 모습(1932–1941)

이처럼 오랫동안 수호신으로 여겨진 하치만 신은 지배계급에게 특히 중요시되면서 하치만 신앙이 일본 전국으로 널리 퍼지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우사 신궁은 하치만 신을 모신 신사들의 총본궁으로서 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한 때는 규슈에서 가장 큰 영지를 가진 지주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치 정세의 변화와 무사 계급의 대두로 우사 신궁의 지위는 약화되었고 결국 지배지의 대부분을 잃고 말았습니다. 1868년 무사 시대가 끝나고 천황의 통치가 다시 부활한 후, 정부의 명령에 따라 우사 신궁을 포함한 몇몇 신사들에게 높은 지위가 주어지면서 우사 신궁의 재건도 촉진되었습니다. 그리고 쇼와의 대재건(1932~1941) 때 경내 전체를 개보수하는 대규모의 작업을 거쳐 현재의 배치와 외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Main sanctuary area at the Jogu (Upper Shrine)

조구

신불습합

우사 신궁은 신토와 불교가 융합된 ‘신불습합’ 신앙의 발상지 중 하나로도 여겨집니다. 여기서 신불습합은 중국에서 전래된 불교가 일본의 토착 종교인 신토와 융합하여 8세기경 형성되기 시작한 신앙 형태를 말합니다. 이후 우사 신궁은 신관과 승려 모두가 종교 의식을 행하는 신사와 사찰이 융합된 거대한 종교 시설로 발전했습니다. 이때 경내에 지어진 미로쿠지 절(彌勒寺)은 주요 사찰로서 종교적, 행정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신불습합이 하치만 신앙과 함께 일본 전국으로 확산됨에 따라 우사 신궁은 다른 신불습합 형태 신사들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신불습합의 신앙 형태는 수세기에 걸쳐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1868년 메이지 정부가 내린 신토와 불교를 분리하라는 명령에 의해 그 명맥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이후 모든 불교 시설은 우사 신궁 경내에서 배제되었고 우사 신궁은 완전히 신토만을 위한 종교 시설로 변모했습니다. 그러나 우사 신궁에서 행해지는 특정 의식이나 축제 등의 연중 행사 중에는 신불습합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요소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Rokugo Manzan Pilgrimage

로쿠고만잔 미네이리

Hokke Hakko ritual

법화팔강

Chushusai festival

주슈사이(가을 중순 축제)

Japan Tourism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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